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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 판타지 애니] 사이버펑크 EP-01 <기대와 실망, Let you down> 1화

by jasuh 2023. 5. 18.

목차

  • 사이버펑크 서막
  • 사건의 발단, 소프트웨어 불법 업데이트
  • 기대와 실망
  • 느낀 점

사이버펑크 서막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는 2077년 사이버펑크 세계관을 그리고 있다. 단어 '사이버'는 신체에 기계 장비를 이식한 사람을 일컫고  '펑크'는 존재 자체로 개인을 구속하는 주류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파생되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불법과 위험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이버 세계관을 일컫는다. 해당 애니는 몸에 장비를 이식한 사이버 인간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에피소드를 다루었다. '사이버펑크'는 '엣지러너'라고도 불린다. 어떻게 보면 용병으로 일을 하다 죽는 것이 이상하지 않기에 그들이 걸어가는 길이 위태하여 그렇게 불리는 듯하다. 첫 화는 해당 세계관 속에서 선별된 사람들만 다닐 수 있는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가난한 학생인 데이비드 마르티네즈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그 문을 열었다.

사건의 발단, 소프트웨어 불법 업데이트

아카데미(일본에서의 아카데미는 한국에서의 사설학원을 의미하지 않고 대개 사립학교를 의미한다)를 다니고 있는 데이비드 마르티네즈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학생이다. 가정이 넉넉하지 않아 학교 생활과 관련된 부대비용을 내는데 부담이 있다 . 이런 상황은 동급생 카츠오 타나카와 갈등이 되어 사건 전개의 불씨를 생성한다. 카츠오 타나카, 아라사카(세계관 TOP2 글로벌기업) 임원의 아들로 주인공과는 다르게 가정 형편이 유복하다. 에피소드 1화 <기대와 실망>에서 데이비드의  소프트웨어 불법개조로 그에게 폭력과 패드립을 시전 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리퍼닥의 도움을 받아 불법으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한 후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같은 네트워크 상에 접속한 학생들의 하드웨어에 손상을 주게 된다. 이로 인해 어머니(글로리아 마르티네즈)가 학교에 소환되었다. 어머니 글로리아 마르티네즈는 하나뿐인 아들을 아카데미에 보내기 위해 응급구조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가 아들의 비싼 학비를 낼 수 있는 이유는 죽은 사람의 사이버웨어를 몰래 뽑아 장기매매 일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들과 귀가하는 도중 학교에서 귀가하는 다른 엣지러너의 총격전에 총상을 입고 차가 전복되는 상황에 이른다. 눈을 떴을 때 어머니는 입원 중에 있었고 보험이 가입되어 있지 않아 가장 질이 낮은 의료 수술을 받게 된다. 더 이상 학비를 낼 돈도 자신이 학교를 다니기를 간절히 바라던 어머니도 세상에 없는 데이비드는 학교를 나오게 되고 그가 군용 사이버웨어인 산데비스탄을 장착하는 계기가 된다. 

기대와 실망

해당 에피소드, 기대와 실망편의 영어 제목은 Let You Down이다. 좋은 학교를 졸업해 좋은 기업에 다니길 바라는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제목처럼 해석된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처지를 들여다봤을 때 조금 더 나은 삶으로의 현실 장벽은 높기만 하다. 좋은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선 좋은 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좋은 학교를 다니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이런 점들은 오늘날과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좀더 나은 현실을 위한 불법적인 일의 선택은 과연 불법일 수 있을까?. 이런 상황으로 (어머니의 부재로 소득이 없고, 학교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주변에 도와줄 지인이 없는) 데이비드가 장착한 산데비스탄은 앞으로 데이비드의 앞날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다줄 것인가? 

느낀 점

개인적인 생각으로 부모님의 기대는 수입이 없는 시절 후원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이 딱히 나쁜 것도 아니고 기대에 부응하면 좋아해 주시고 지금 삶을 사는 데 있어 특별히 더 나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 나이 만 30살 지금 이 시점에서 십 대 시절 부모님의 기대에 자식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삶을 살았어야 좋았을까 생각해 보았을 때 어쩔 도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데이비드와 같이 아무도 기댈 곳이 없어 상황이 아닌 이상 현재의 삶은 평탄하기 때문이다. 조금 일찍 알았으면 좋았겠다 싶은 점은 나의 삶의 방향성을 누군가 설정해 주었을 때 그 길을 오래 걸을 수 없고 내가 인생의 방향을 설정했을 때 오래 걸을 수 있다는 점이다. 추가로 어려움이 닥쳤을 때 부모님이 도와주실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정리하면 부모님의 기대에 적절히 타협하고 내 인생의 방향은 내가 정해서 사는 것이 나와 부모님 모두에게 좋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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